이 글은 동영상 추천 글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아래 동영상을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RNnnnx56XlY


한반도는 왜 화강암 천지일까요

우리가 산에 오르거나 절에서 석탑을 바라볼 때, 혹은 비 오는 날 등산로에서 발이 미끄러질 때, 그 아래에 깔린 돌이 화강암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전북대학교 지구환경과학과 오창환 명예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이 얼마나 드라마틱한 역사를 품고 있는지 새삼 놀라게 되었습니다. 한반도 면적의 무려 3분의 1이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화강암은 지하 20km에서 올라온 암석입니다

화강암 하면 흔히 화산과 연결 짓기 쉽지만, 엄밀히 말하면 지표에서 터지는 화산과는 다릅니다.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은 염기성 마그마가 지표 밖으로 흘러나와 굳은 것입니다.

 

반면 산성 마그마는 점성이 강해서 가스를 가두고 있다가 폭발적으로 터지거나, 지하 깊은 곳에서 천천히 식으면서 화강암이 됩니다. 한반도의 화강암은 한때 지하 20km 아래에 있던 암석들입니다. 그것이 지표면까지 올라왔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지각 변동의 증거입니다.

 

에베레스트산 높이가 약 9km이니, 그보다 두 배 이상 깊은 곳에 있던 돌이 땅 위로 드러났다고 생각하면 그 규모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쥐라기 시대, 한반도는 거대한 화산지대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억 년 전, 쥐라기 시대의 한반도는 지금의 일본 열도보다 훨씬 넓은 화산지대였습니다. 당시 태평양 쪽에서 해양 지각이 대륙 밑으로 밀려 들어오는 섭입 현상이 일어나면서, 그 범위가 지금의 베이징까지 이를 만큼 광대했습니다. 현재 일본 열도에서 나타나는 화산 활동의 여섯 배 너비에 달하는 화산지대가 아시아에 펼쳐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지하에는 거대한 마그마 바다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마그마가 식으면서 화강암이 되었고, 이후 지각 변동으로 인해 위로 밀려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쥐라기 공룡 화석이 한반도에 없는 이유

아기 공룡 둘리는 쥐라기 공룡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공룡 화석은 전부 백악기 것들입니다. 고성이나 해남의 공룡 발자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쥐라기 화석은 없는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쥐라기 때 퇴적층이 아예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지하 20km에 있던 화강암이 지표까지 올라오는 과정에서, 원래 지표면에 있던 두꺼운 지층이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쥐라기 공룡들이 살았던 흔적이 담긴 퇴적층 자체가 풍화되고 침식되어 없어진 것입니다. 공룡 화석은 퇴적층 안에 보존되어야 하는데, 그 퇴적층이 통째로 사라졌으니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백악기, 한반도는 공룡들의 피난처였습니다

쥐라기가 끝나고 백악기에 접어들면서 한반도에는 새로운 변화가 찾아옵니다. 해양판이 더 이상 대륙 안으로 밀고 들어가지 못하고 반발력에 의해 빠져나오기 시작하면서, 지각이 잡아당겨지는 인장력이 발생합니다. 이 힘에 의해 땅이 갈라지고 가운데가 내려앉으면서 크고 작은 분지와 호수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의 경상도 지역도 그 시절에는 거대한 호수였습니다.

 

이 호수들은 먹이와 물이 풍부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일부 공룡학자들은 한반도를 백악기 공룡들의 마지막 피난처 중 하나로 보기도 합니다. 더워지는 기후와 속씨식물의 번창으로 살기 힘들어진 시대에, 한반도의 크고 작은 호수들이 공룡들을 불러모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송산 고정리의 공룡 알화석지가 그 흔적 중 하나입니다.

화강암이 많은 땅에서 석유가 나지 않는 이유

한반도에 석유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 이유를 화강암과 연결 지어 생각해보면 꽤 명쾌한 설명이 나옵니다.

 

석유가 만들어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동시에 갖춰져야 합니다. 유기물이 풍부하게 쌓인 퇴적암이 필요하고, 그 석유가 스며들어 고일 수 있는 암석 구조, 그리고 석유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위를 덮어주는 덮개암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석유는 오랜 시간 바닷속에 유기물이 쌓이고, 그것이 적당한 온도와 압력 속에서 퇴적층 안에 봉인된 결과물입니다.

 

한반도는 판게아 시절에도 육지였던, 지질학적으로 매우 오래되고 안정적인 땅입니다. 바다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유기물을 축적해야 석유가 생길 조건이 마련되는데, 한반도는 그런 역사가 거의 없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쥐라기 때 화강암이 지표면까지 밀고 올라오는 과정에서 퇴적층 자체가 사라져 버렸으니, 석유가 만들어지고 고일 조건이 근본적으로 갖춰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화강암은 지질학적으로 석유가 생성되거나 머물 수 없는 암석입니다. 중동의 거대한 유전들이 오랜 시간 얕은 바다였던 지형에서 나오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환경인 셈입니다.

화강암 덕분에 물이 맑은 나라

석유 대신 얻은 것 중에서 우리가 가장 일상적으로 누리는 혜택이 바로 깨끗한 물입니다.

유럽에서 생활하거나 여행한 분들은 수돗물에서 석회 냄새가 나거나 커피포트 안쪽에 하얀 찌꺼기가 끼는 경험을 해보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석회암 지형을 통과한 물에 칼슘과 마그네슘 성분이 많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물을 경수라고 부르는데, 맛도 다르고 피부에도 자극이 됩니다.

 

반면 화강암을 통과한 물은 불필요한 용해 성분이 적고 깨끗한 연수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국내 생수 제조업체들이 화강암 분포 지역에 취수공을 뚫어 지하수를 생수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지하수 연구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무암에 비해 화강암 지역의 물에서 중금속이 덜 검출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한반도의 강과 계곡 물이 상대적으로 맑고 부드러운 것, 한국 음식에서 물의 맛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화, 그리고 전통적으로 차를 달이거나 된장을 담글 때 물을 가렸던 이유도 어쩌면 이 화강암 지형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화강암이 우리 삶에 미친 영향

화강암은 단순한 돌덩어리가 아닙니다. 화강암이 풍화되면 마사토라는 모래 형태의 토양이 되는데, 물 빠짐이 좋아서 농사짓기에 유리합니다. 또 기후 조건이 맞으면 고령토로 변하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백자와 고려청자를 만든 원료입니다. 서울, 전주, 청주를 비롯한 우리나라 주요 도시의 절반 이상이 화강암 지대 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탄하고 넓은 지형을 만들기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서울처럼 지하철이 여러 층으로 겹쳐 다닐 수 있는 것도 화강암이 단단하게 땅을 받쳐주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지반에서는 그런 공사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이용하는 지하철 몇 겹의 노선이 사실은 화강암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바다는 지금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태평양은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바다입니다. 2억 5천만 년 전 모든 대륙이 하나로 뭉쳐 있을 때부터 존재하던 바다가 지금의 태평양이 되었습니다. 반면 대서양과 인도양은 대륙이 갈라지면서 새로 생겨난 젊은 바다입니다.

 

태평양은 환태평양 불의 고리를 통해 해양 지각이 맨틀 속으로 계속 빨려 들어가면서 조금씩 좁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대서양과 인도양은 지금도 넓어지는 중입니다. 이 속도라면 약 2억 년 후에는 태평양이 사라지고 한반도와 북아메리카 대륙이 맞닿을 수 있다고 합니다.

 

지질학은 오래된 과거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발 아래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북한산의 화강암 바위를 손으로 만질 때, 그 돌이 2억 년의 시간을 거쳐 지하 20km에서 올라온 것이라는 사실을 한 번쯤 떠올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석유는 없지만 맑은 물이 흐르고, 단단한 땅 위에 도시를 쌓아온 이 땅의 역사가 생각보다 훨씬 깊고 드라마틱합니다.

추가 참고 자료

한국의 화강암,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A%B5%AD%EC%9D%98_%ED%99%94%EA%B0%95%EC%95%94

화강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4538

지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4408

석유의 4대 부존 조건, SK이노베이션 뉴스룸 https://skinnonews.com/archives/61743

석유,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84%9D%EC%9C%A0

공룡이 많았던 한반도, 왜 석유는 없을까, 브런치 모두의 과학 (2020) https://brunch.co.kr/@sciforus/166

우리나라는 화강암 지대, 정수기 필요 없다, 녹색경제신문 (2023) https://www.greened.kr/news/articleView.html?idxno=308497

화강암지역 지하수 수질의 특징과 불소원인에 관한 물-암석반응 연구, 지질공학 18권 1호 (2008) https://dspace.kci.go.kr/handle/kci/10668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