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영상: 이 글은 영국 런던 곳곳에 숨겨진 과학 문화의 흔적을 따라간 여행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영상에서는 실제 장소의 모습과 함께 더욱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CaFIjH4gaI


과학자를 왕처럼 대우한 나라

1727년,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역사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원래 왕과 왕족만 묻히던 이곳에 처음으로 과학자가 안장된 것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아이작 뉴턴이었습니다. 자작과 후작들이 운구를 하며 국장을 치렀고, 이 장면을 목격한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는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강력한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볼테르는 재능이 뛰어났지만 귀족들과 말다툼을 하다가 투옥되고 영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똑똑하고 능력 있어도 평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잡혀가는데, 뉴턴도 평민인데 어떻게 저곳에 묻히는가?" 볼테르는 프랑스로 돌아가 철학서간을 쓰며 "이런 나라가 있다, 영국은 다르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프랑스어로 번역해 지식인들에게 강의했고, 이때부터 계몽주의라는 말이 탄생했습니다.

영국은 신분제가 있었지만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신분을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는 뉴턴 이후 스티븐 호킹, 찰스 다윈 등 과학자들이 계속 안장되며 과학자들의 회랑이 만들어졌습니다.

위 퓨, 위 해피 퓨, 밴드 오브 브라더스

웨스트민스터 사원 공군 채플에는 특별한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We few, we happy few, band of brothers" - 우리는 소수다, 행복한 소수다, 한 무리의 형제다. 이것은 셰익스피어 희곡 헨리 오세에 나오는 연설입니다.

헨리 오세는 프랑스 침공 전 연설에서 "우리는 소수지만 행복한 소수다. 나와 함께하는 모든 평민들이여, 우리는 이제부터 형제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귀족이 필요한 게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16세기 때 이미 영국 왕들은 이런 생각을 했고, 함께 싸운 사람들은 웨스트민스터에 함께 묻혔습니다. 신분은 있지만 경계를 넘는 문화가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과학으로 재건한 도시

1666년 대화재로 런던이 전소되었을 때, 영국은 과학으로 재건하기로 했습니다. 세인트폴 대성당의 거대한 돔을 설계한 사람은 크리스토퍼 렌과 로버트 후크라는 과학자들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1660년 세계 최초의 과학 단체인 런던 왕립학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영국은 돔형 구조물을 짓기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수학적으로 곡선을 이용한 구조를 계산해 독자적인 방식으로 완성했습니다. "우리만의 과학으로 완성하겠다"는 상징이었습니다. 30년 가까이 공을 들인 세인트폴 대성당은 과학으로 도시를 재건한다는 영국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만국박람회와 과학 컴플렉스

1851년,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 앨버트 공은 세계 각국이 과학과 산업 수준을 경쟁하는 만국박람회를 개최했습니다. 하이드파크 남쪽에 유리로만 된 크리스탈 팰리스를 지었는데, 크기가 현재 코엑스의 세 배였습니다. 놀라운 점은 국가 예산이 아니라 귀족들과 산업 자본가들이 자발적으로 펀딩한 것입니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은 거의 매일 박람회장을 찾았고, 수많은 입장객 속에서 "여러분과 함께 간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당시 영국 인구의 삼분의 일이 관람했습니다. 박람회는 엄청난 수익을 냈고, 이 돈으로 그 일대를 과학 컴플렉스로 만들었습니다.

앨버트 공의 기념상에는 천문학, 기하학, 지질학 등 여덟 개 기초학문을 상징하는 여신상이 있고, 네 귀퉁이에는 농업, 상업, 공업, 제조업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덟 개의 기초학문으로 네 가지 산업을 융성시키겠다는 뜻입니다. 맨 아래에는 169명의 예술가 부조가 있습니다. 호메로스, 미켈란젤로 등 세계의 예술가들을 새긴 것입니다. 먹고 살만 해야 예술도 꽃피운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는 임페리얼 칼리지, 과학박물관, 자연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모두 무료 입장입니다. 정부 지원금은 절반 정도이고 나머지는 자체 펀딩과 투자로 운영됩니다. 로얄 앨버트 홀은 6천 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예술과 과학의 진흥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좌석을 판매해 자산화하는 방식으로 300년간 민간 운영되고 있습니다.

예술 속에 녹아든 과학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는 조셉 라이트의 "공기 펌프 실험"이 있습니다. 유리구 안에 새를 넣고 공기를 빼내는 실험 장면인데,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근심과 절망으로 가득합니다. 1700년대에 이미 과학의 이중성을 포착한 작품입니다. 과학이 빛이 될 수도 있지만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날카롭게 집어낸 것입니다.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는 나폴레옹 시대 전성기를 누렸던 증기선이 퇴역하며 해체를 기다리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노을 속에서 쓸쓸하게 서 있는 배를 통해 한 시대가 저문다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영국이 산업적으로 발전할 때도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경고하고 시대를 반영했습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뉴턴을 그릴 때 그가 산호초와 생물들을 보지 않고 땅만 보며 기하학 도형만 그리는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너는 자연철학자라 하지만 실제 자연은 보지 않았다"는 비판이었습니다. 테이트 모던 갤러리는 발전소였던 터빈 홀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을 담았습니다. 과학과 예술이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자립하는 과학자들

마이클 패러데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저는 평범한 곳에 묻히겠습니다." 그는 1825년 크리스마스 강연을 시작한 사람입니다.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은 서커스를 보겠지만, 나는 과학을 가르칠 수 있고 아이들이 너무 좋아할 것이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강연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왕립연구소는 정부 지원을 한 푼도 받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이 재미있는 실험 강연을 해서 비싼 입장료를 받아 운영합니다. 음악가들이 공연으로 생계를 유지하듯, 과학자들도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히즈 마제스티 극장은 1705년 개인들이 투자해 만든 극장으로, 헨델이 채권 투자로 번 돈을 다시 극장에 투자하며 300년간 이어져 왔습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문화

옥스퍼드 대학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크리스토퍼 렌과 로버트 후크가 만났습니다. 로버트 후크는 성가대원이었습니다.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의 합창단에는 과학자들이 많았고, 20세기 초 블룸즈베리에서는 경제학자 케인즈, 작가 버지니아 울프, 화가들이 같은 동네에 살며 매일 교류했습니다. 퇴근 후 시간, 주말에 함께 어울리며 생각을 나눴습니다.

영국 과학박물관 입구에는 증기기관과 철제 선반이 있습니다. 모즐리의 선반으로 정밀 가공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찰스 배비지의 세계 최초 컴퓨터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19세기 초, 톱니바퀴로 작동하는 기계식 컴퓨터였습니다. 과학박물관은 기본적으로 과학을 생각하는 폭이 다릅니다. 뉴턴은 꼭대기 구석에 있고, 실제 산업을 이끈 것들이 중심에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영국 곳곳에는 과학 문화의 흔적이 살아 숨 쉽니다. 존 스노우 펌프는 수인성 전염병을 증명한 장소를 기념하며, 그리니치 천문대에는 시간을 정한 과학자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1868년 이토 히로부미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공부하고 돌아가 일본에 최초의 공과대학을 만들 때, 우리는 최국 정책으로 중국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과학 문화란 단순히 과학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자를 존중하고, 민간이 자립적으로 운영하며, 예술이 과학을 비판하고,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지는 생태계 전체를 말합니다. 영국은 300년 전부터 이런 토대를 쌓아왔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과학을 대하는 문화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