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지나간 한 해가 저물어간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적 격변과 경제적 불확실성이 교차했던 한 해였다. 동시에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과 새로운 기술 혁신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전환점이기도 했다. 올 한 해 우리를 흔들었던 주요 사건들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본다.
한국, 정치적 대전환과 시련의 해
탄핵과 새 정부 출범
올해 한국은 정치적으로 전례 없는 격변기를 겪었다. 전년도 말부터 이어진 탄핵 정국은 새해 초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으로 이어졌고, 1월 중순 구속 영장이 발부되며 극에 달했다. 1월 말에는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점거 폭동이 발생하는 등 극단적 상황까지 치달았다. 6월 4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고, 같은 날 취임식과 함께 새 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광복과 남북 분단 80주년을 맞이한 역사적인 해이기도 했다.
기록적 폭설과 대형 산불
자연재해도 국민을 힘들게 했다. 1월 27일부터 시작된 설 연휴 폭설은 29일까지 계속되며 중부와 제주를 중심으로 기록적인 피해를 냈다. 축사 붕괴와 교통 마비가 이어졌고, 2월과 3월에도 강추위와 폭설이 반복되었다. 3월 21일부터는 영남권을 중심으로 대규모 산불이 발생했다. 경북 영양과 안동에서 시작된 불길은 빠르게 번져 고운사가 전소되는 등 문화재 피해가 컸다. 3월 23일 산불 재난 경보가 심각 단계로 상향되었고 국가 소방동원령이 발령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27일에야 대부분의 불길이 잡혔지만 소방헬기 추락으로 조종사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디지털 안전 위협과 경제 성과
개인정보 유출 사고도 연이어 터졌다. 1월 SK 텔레콤 유심 정보 유출을 시작으로 3월 KT 무단 소액결제 침해 사고, 6월 YES 24 서비스 마비 사태, 7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잇따랐다. 9월 말에는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정부 주요 정보시스템이 일시 마비되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 경제 분야에서는 4월 론스타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 수조 원의 배상금을 받지 않게 된 것이 긍정적 소식이었다.
경주 정상회의와 외교 성과
외교 무대에서는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20년 만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개최하며 국제 위상을 드러냈다. 새 정부는 8월 25일 미국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열었고, 6월 17일과 8월 23일 두 차례 일본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11월 3일에는 11년 만에 한국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며 양국 관계 전면 복원에 합의했다. 10월 29일에는 경주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연계한 관세 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했다. 11월 2일에는 군사정찰위성 5호기 발사에 성공했으며, 북한과의 긴장은 연중 계속되었다.
세계, 트럼프 재집권과 새로운 질서
관세 전쟁과 증시 폭락
올해 세계 정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과 함께 급격히 재편되었다. 1월 20일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취임 당일 세계보건기구와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선언하며 국제 공조 체제에 균열을 냈다. 4월 2일 미국 해방의 날로 명명하며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고율 관세 부과를 단행했고, 이는 글로벌 무역 전쟁을 촉발했다. 4월 3일부터 4일까지 이틀간 미국 증시에서만 6조 6천억 달러가 증발하는 대폭락이 발생했고, 4월 7일에는 아시아와 유럽 증시도 연쇄 폭락했다. 4월 8일 백악관이 90일 유예를 발표했다는 가짜 뉴스로 시장이 요동치는 혼란까지 벌어졌다.
미중 패권 경쟁 심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기술, 통상, 안보 전 분야에서 전면적 대결 양상을 보였으며, 양국 모두 자국 중심의 공급망과 기술 생태계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1월 중국은 저가 인공지능 모델 딥시크를 공개하며 미국의 기술 독점에 균열을 냈고, 이는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인공지능 기업들의 주가에 큰 타격을 입혔다. 7월 말에는 미국이 중국 신장 위구르족 강제노동 방지법을 본격 시행하며 신장산 면화와 폴리실리콘 수입을 금지했고, 이는 태양광 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 지역 긴장 고조
아시아 지역에서는 심각한 긴장이 고조되었다. 11월 7일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 유사시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며 중일 갈등이 촉발되었다. 중국은 즉각 반발하며 경제 제재와 문화 교류 중단을 발표했고, 양국 간 인적 교류가 급격히 위축되었다. 12월 들어서는 일본 관련 중국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일본 참가자가 배제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서는 4월 카슈미르 지역에서 총기 테러로 2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고, 이후 양국 간 군사 충돌로 이어지는 등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유럽 경제의 침체
유럽은 정치적 혼란과 경제 침체의 이중고를 겪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연립정부가 붕괴되며 정치적 불안정성이 고조되었다. 독일은 2년 연속 소폭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정체 국면에 빠졌고, 프랑스는 9월 정부가 붕괴되며 재정적자 문제로 국채금리가 급등했다. 2025년 유로존 경제성장률은 1% 내외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며, 독일의 부진한 성장세가 지역 전체의 발목을 잡았다.
일본 경제의 완만한 회복
일본 경제는 내수 중심으로 완만한 회복세를 보였다.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률 둔화로 실질소득이 늘며 민간소비가 개선됐다. 일본은행은 17년 만에 금리를 인상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했으나, 점진적인 인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관세정책 영향으로 수출과 기업 투자가 위축되면서 2025년 성장률은 1% 내외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10월 21일에는 다카이치 사나에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하며 정치적 변화도 나타났다.
중국 경제의 난관
중국은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 침체와 미국의 고율 관세로 어려움을 겪었다. 1월 저가 AI 모델 딥시크 공개로 기술 경쟁력을 과시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 관세 부과와 대중 제재로 성장의 수출 의존도가 높은 중국 경제는 4% 초반대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12월에는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2025년 적절한 완화 통화정책과 재정 확대 정책을 발표했지만, 지방정부 부채 문제와 내수 부족이 여전히 주요 과제로 남아있다.
동남아시아의 성장과 기회
동남아시아 경제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수혜를 입으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베트남은 3분기 8.23%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아세안 6개국 중 선두를 달렸고, 전자제품 제조와 전기차 배터리 생산 허브로 부상했다. 인도네시아도 니켈 생산 세계 1위를 기록하며 재생에너지 산업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탈중국을 추진하면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가 대체 생산기지로 각광받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3년째 이어지며 장기전 양상을 보였다. 유엔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민간인 사상자는 4만 명을 넘었고, 우크라이나는 총 사망자가 1만 2천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전선은 수개월째 고착 상태를 이어갔으며,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으로 전쟁은 중대한 변곡점을 맞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지원 축소 가능성을 시사하고 키스 켈로그 특사를 임명해 종전 협상에 나섰다. 러시아는 제재와 23% 고금리, 9% 물가상승률 등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지만, 푸틴 대통령은 전쟁 지속 의지를 유지하고 있다.
중동 분쟁과 휴전 협상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2025년 1월 15일 휴전 합의에 도달했다. 1월 19일부터 6주간 휴전과 인질 교환이 발효됐지만, 가자지구에서는 이미 4만 7천여 명이 사망하고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이스라엘도 13개월간의 전투 끝에 2024년 11월 27일 임시 휴전에 들어갔다.
한편 6월에는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면 충돌이 벌어졌다. 6월 13일 이스라엘은 이란 핵 시설을 공습했고, 6월 22일에는 미국이 B-2 폭격기로 직접 타격에 나섰다. 이후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붕괴되며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인공지능, 일상 속으로
비즈니스 혁신의 원년
올해는 인공지능이 실험실을 넘어 실제 비즈니스와 일상에 본격 도입된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전 세계 기업의 인공지능 도입률이 작년 55%에서 올해 75%로 급증했다.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단순 업무를 넘어 복잡한 의사결정까지 지원하기 시작했고, 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확산되었다.
기술적 진보와 산업 확산
기술적으로는 추론 능력이 크게 향상되어 인공지능이 단순히 학습한 내용을 반복하는 수준을 넘어 논리적 사고가 가능해졌다. 소형 언어 모델이 산업별로 특화되면서 더욱 효율적이고 저렴한 인공지능 솔루션이 등장했다. 비전 트랜스포머와 엣지 인공지능 기술 발전으로 실시간 이미지 처리와 분석 능력도 향상되었다. 의료, 제조, 금융 등 전 산업에서 인공지능 활용이 확대되었으며, 1월 라스베이거스 CES 2025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주목받았다.
거품 논란과 윤리적 과제
하지만 인공지능 투자가 실제 수익으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거품 논란도 커졌다. 막대한 투자에 비해 부진한 실적과 고평가된 주가가 1990년대 말 닷컴 버블을 연상시킨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데이터센터 건설로 인한 환경 문제와 윤리적 사용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각국 정부는 인공지능 규제 강화에 나섰고, 기업들은 책임 있는 인공지능 개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변화 속에서 찾는 희망
돌이켜보면 격동의 한 해였다. 정치·경제적 불확실성과 국제 질서 재편 속에서 자연재해, 안보 위협, 사이버 보안 문제 등 다양한 도전에 직면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은 국제 평화를 흔들었고, 미중 패권 경쟁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웠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기술 혁신과 국제 협력은 계속되고 있으며,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한국은 새로운 전환점에 섰다. 동남아시아는 공급망 재편의 수혜를 입었고, 인공지능 기술은 산업 전반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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