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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은 멀게 느껴지지만 사실 한국의 일상과 아주 깊게 연결된 지역입니다. 성원대 유럽중동연구소에서 중동과 이슬람을 연구하는 박현도 교수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한국에서 중동이 중요한 이유는 석유 때문이고, 그 석유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모든 삶을 가능하게 한다고요.

 

최근에는 방산 분야에서도 중동 국가들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나서야 유럽이 얼마나 무기가 없는지 알았고, 한국은 북한 때문에 1970년대부터 쉬지 않고 자주국방을 쌓아왔기 때문입니다.

꼭 알아야 할 중동 네 나라

중동을 이해하려면 우선 네 나라를 기억해야 합니다. 튀르키예,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입니다.

튀르키예는 지리적으로 엄연히 중동이지만 스스로 중동이라 불리기를 거부하는 나라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후예답게 역사적으로 중동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흥미롭게도 한국어와 튀르키예어는 9천 년 전 같은 조상에서 갈라진 언어라는 학설이 있습니다. 625 참전국이기도 해서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 남다릅니다.

 

이란은 651년에 이슬람화되기 전까지 조로아스터교를 믿던 페르시아 문명의 나라입니다. 이슬람으로 완전히 바뀌는 데 250년이 걸렸고, 언어도 아랍어가 아닌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페르시아어를 씁니다. 문자가 아랍어와 같아서 혼동하기 쉽지만 전혀 다른 언어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38년 석유가 발견되면서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된 나라입니다. 나라 이름 자체가 왕실의 성씨인 사우드에서 나왔습니다. 무슬림의 성지 메카와 메디나가 있어 이슬람 세계 전체에서 상징적인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이집트는 31왕조에 달하는 가장 오래된 문명국입니다. 원래 아랍어를 쓰던 지역이 아니었는데 이슬람 확산과 함께 아랍화된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인구의 약 10퍼센트는 이집트 기독교인인 콥트교도입니다. 북한과의 인연도 있는데, 1973년 중동전쟁 당시 북한 조종사들이 이집트 편에서 싸웠고 그 때문에 한국과 한동안 거리가 있었습니다. 김일성 사망 이후에야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뿌리

이스라엘은 1948년에 독립한 나라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보다 불과 석 달 앞선 시점입니다.

유대인들의 유랑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전 63년 로마에 지배당한 유대인들은 66년과 132년 두 차례 독립 전쟁을 일으켰다가 135년 완전히 예루살렘에서 추방됩니다. 이후 유럽 곳곳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크리스천 사회에서 차별과 박해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교회가 금기시한 금융업을 떠맡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894년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었습니다. 유대인 장교가 간첩 누명을 쓴 이 사건을 목격한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은 유대인에게는 자신들만의 나라가 필요하다는 시온주의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온주의가 종교 운동이 아니라 세속적 민족주의 운동이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종교적인 유대인 대다수는 오히려 이 운동에 반대했습니다.

 

헤르츨 사후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그 땅에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박현도 교수는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고 말합니다.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위임통치하며 조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전쟁이 시작됩니다.

무슬림과 유대인은 원래 적이 아니었다

흔히 무슬림과 유대인은 오래전부터 갈등해왔다고 생각하지만, 박현도 교수는 이것이 오해라고 말합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종교 갈등이 아니라 시온주의라는 유대 민족주의와 아랍 민족주의의 충돌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오히려 크리스천들이 유대인들을 박해해왔습니다. 638년 무슬림들이 예루살렘을 지배하게 됐을 때, 유대인들을 살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무슬림이었습니다. 1490년 스페인에서 유대인들이 추방됐을 때 받아준 것도 오스만 제국이었습니다. 음식 금기가 비슷하다는 점에서도 유대인과 무슬림은 함께 살기가 더 자연스러운 면이 있다고 박 교수는 설명합니다.

미국은 왜 중동에 계속 개입했나

전직 나토 사령관 웨슬리 클라크 장군의 말이 이를 잘 요약합니다. 석유가 없는 중동은 아프리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중동에는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60퍼센트 이상이 약 10개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미국이 중동에 군사적으로 개입해온 핵심 이유였습니다.

 

2018년 이후 미국이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의 부상 덕분입니다. 그러면서 미국의 관심은 중동에서 중국 봉쇄를 향한 아시아 재균형 전략으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중동 뉴스를 이해하는 두 가지 열쇠

박현도 교수는 중동 뉴스를 볼 때 두 가지 축을 기억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어떤 나라가 이란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리고 어떤 나라가 무슬림 형제단을 지지하고 반대하는지입니다.

 

무슬림 형제단을 지지하는 나라는 튀르키예와 카타르 정도이고,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은 반대합니다. 특히 이집트는 무슬림 형제단을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나라입니다. 이란을 좋아하는 나라도 거의 없습니다. 이란이 이슬람 혁명을 수출하려 하기 때문에 왕정 국가들은 이란을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여깁니다.

 

중동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닙니다. 각 나라마다 믿는 것, 역사, 동맹, 적이 제각각입니다. 그 복잡한 결을 이해할 때 비로소 중동에서 터지는 뉴스 하나하나가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이기 시작합니다.